오늘은 기업은행의 외국인 선수 레베카 라셈의 V리그 마지막 게임이었습니다. 저는 라셈이 외국인 선수들 중에서는 기량이 조금 떨어지고 그랬어도 항상 코트 위에서 열심히 했던 선수여서 엄청 좋게 봤던 선수였는데요, 라셈이 떠나게 될 것 같다고는 여겼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결정이 될지도 몰랐고, 기업은행이 이런 식으로 통보해서 일처리를 할지도 몰랐습니다.
엄청 매너없는 방출통보 였음에도 라셈은 코트에 서는 동안 최선을 다했고, 전혀 싫은 내색이나 이런 것 없이 더 열심히, 몸을 날리고, 선수들과 화이팅을 하면서 게임에 임해왔습니다.
기업은행의 여러가지 사건들 이후에 사실 기업은행 경기를 응원하진 않았습니다. 마음이 잘 안갔던 것도 사실이구요. 그런데 라셈이 있어서 기업은행을 조금이라도 더 응원할 수 있었고, 오늘 게임은 라셈의 마지막 게임인만큼 꼭 기업은행이 승리해서 마지막에 승리라는 좋은 기억을 갖고 돌아갈 수 있길 바랐습니다. 그러나 역시 이곳은 프로의 세계...결과는 바라는대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수선함의 끝이었던 오늘 게임
오늘은 두 팀 다 솔직히 조금 엉망이었던 게임이었습니다. 제대로 시원한 공격 아니 시원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합이 맞는 듯한 공격이 들어간 것을 많이 못봤던 것 같아요. 두 팀 다 뭔가 공격 전개가 삐걱거렸고, 두 팀의 세터가 모두 ??? 이런 플레이를 선보였습니다. 염혜선은 좋은 공격수를 두고도 처리성으로 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토스, 거의 눕다시피 해서 쳐내야 했던 상황 이런 장면들이 자주 나왔고, 김하경도 더블컨택 범실부터 시작해서 애매한 코스로의 토스가 공격수의 타이밍에 맞춰주는 것이 아니라 공격수가 올려둔 토스에 맞춰서 때리도록 흘러가다보니 공격다운 공격들이 잘 안나왔습니다. 정말 웃겼던 장면이 다이렉트로 바로 공격할 수 있는 장면에서 짜기라도 한 듯이 서로 세터들이 그걸 오묘한 토스로 이어갔는데, 이걸 또 서로 블로킹과 패스페인트로 바로 만회하는 장면들이 나왔습니다. 뭐 만회하긴 했어도 사실 만회보다 그 전에 확실히 처리하는게 맞는 것이라 만회할 일을 안만드는게 베스트이지 않았나 싶네요. 중계진들이 1세트 초반에는 몸이 덜 풀린 것 같다 이렇게 좀 이야기 했는데 그게 2세트까지 지속되고 경기 전체적으로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염혜선과 이소영의 불협화음
시즌 완전 초반에 염혜선과 이소영이 잘 맞지 않아서 위력이 안나오다가 한 번 딱 그 타이밍이 맞기 시작하고 이소영이 엄청 몰아치고 하면서 이제 호흡 걱정은 없겠다 싶었는데, 다시금 뭔가 시즌 초반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조금 흔들리는 리시브들도 있었겠지만, 염혜선의 코스 선택이나 이런 것이 정교하거나 확신이 없는 느낌이랄까요. 뭔가 리듬이 완전히 무너져있다보니 염혜선의 행복배구 본 적이 오래된 듯한 느낌입니다. 그렇게 되다보니 이소영의 파괴력있는 모습도 못본지 오래된 것 같구요. 오늘 두 팀 다 안풀리는 와중에 인삼공사가 조금 더 좋은 수비를 바탕으로 어떻게든 승리를 따내긴 했으나 이 불협화음을 얼른 환상의 하모니로 바꾸지 못한다면 인삼공사가 어렵게 시즌을 풀어나갈 수 밖에 없어보입니다.
마지막 게임에서 빛났던 라셈
경기 초반에 옐레나에게 연이은 블로킹을 당하고 이럴 때 마지막까지 라셈이 옐레나에게 막히면서 게임이 마무리 되려나 했는데 라셈이 차근차근 게임을 풀어나가면서 시원한 득점 장면들 많이 보여줬습니다. 성공률이 높진 않았습니다만, 필요할 때 라셈이 연속 득점으로 팀을 이끌고 가면서 그래도 끝나는 순간까지 경기를 알 수 없게 흐르게 해준 점이 정말 좋았습니다. 라셈이 근래에 게임들에서 보면 계속 활약이 괜찮았는데,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라셈이 좋은 활약을 해준 경기들마다 항상 들었던 생각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는 김주향
오늘 제 눈에는 양 팀에서 가장 눈에 띄는 활약을 해준 선수는 김주향이었습니다. (기록적으로 보면 옐레나가 당연히 최고 잘한 선수였지만) 김주향이 서남원 감독 경질전에 리시브 붕괴, 연속 서브범실로 완전 자신감을 잃은 모습이었고 무너진 듯 했는데, 무리한 스파이크 서브를 버리고 안정적으로 서브를 넣으면서 서브 범실을 상당수 줄였고, 리시브도 최근에 자신에게 오는 것들 그래도 잘 버텨주고 있고, 여기에 최근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스파이크를 치는 스윙 스피드가 매우 빠르고, 경쾌해져서 시원한 득점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1세트 초반부터 기업은행이 많이 뒤쳐져있을 때 김주향의 득점들이 터져나오면서 분위기를 조금 가져올 수 있었고, 오늘도 팀에서 라셈과 함께 12득점으로 가장 많은 득점을 올려준 선수가 김주향이었습니다.
굿바이 라셈
제가 여자배구 입문이 올 해가 처음이라 그 전에는 어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외국인 선수를 방출하고 하는 것은 프로스포츠에서 흔히 있는 일이며, 특별하거나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라셈의 경우에는 오늘 중계만 봐도 그렇고 엄청 특별하게 다뤄준 듯 합니다. 라셈의 할머니가 한국인이어서 조금 더 그런 부분이 어필이 된 것도 있겠지만, 저는 그런 부분들 보다 방출통보 방식이 라셈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방식이었음에도 라셈이 그 이후부터 보여준 대처, 경기에 임하는 태도, 성실하게 마지막까지 팀에 임하는 모습 등 진정한 프로선수의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오늘 클로징은 거의 라셈 특집이었던 것처럼 다뤄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기업은행 유니폼을 고를 때 처음에 라셈 선수로 가려다가 기량 부족으로 교체가 될 것 같아서 유니폼이 배송올 때 쯤에 라셈이 기업은행의 선수가 아닐 것 같아서 그러면 국내 선수로 가보자 싶어서 조송화로 선택했던 것인데, 안전한 선택이 될 것이라 생각했던 조송화는 프로선수 답지 않은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며 오히려 라셈보다 먼저 기업은행을 떠났고, 유니폼을 팬이라고 입고 다니기 부끄러운 선수가 됐고, 라셈은 방출로 떠나는 선수임에도 많은 팬들에게 멋진 프로의식을 가진 선수로 기억되면서 비록 기업은행의 선수가 아니게 됐지만 유니폼을 입고 다녀도 부끄럽지 않은, 오히려 팬인 것이 자랑스러울 수 있는 선수로 기억되게 됐네요. 라셈이 인터뷰 했던 것처럼 언제가 될 진 모르겠지만 꼭 다시 한국의 V리그에서 라셈을 다시 만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고, 그 때는 더 기량을 갈고 닦아서 끝까지 V리그에 남아 멋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그 날이 빠르게 오기를 기다려봅니다. 힘든 팀 상황에서 끝까지 열심히 해준 라셈 선수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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